“활쏘기는 나 자신과의 싸움”···'국궁'에 빠진 대학생들

입력 2020-08-21 20:10   수정 2020-08-24 11:53


[한경 잡앤조이=이진호 기자/강민우 대학생 기자] ‘습사무언(習射無言)’. 활을 쏠 땐 말이 없어야 한다. 남산 중턱에 자리한 전통 활터 ‘석호정’에 새겨진 말이다. 침묵이 흐르는 사대(활을 쏘는 자리) 위에 선 궁사들이 차례대로 활시위를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의 힘이 궁사들의 등근육에 집중됐다. 시위를 놓는 순간,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퍽’하는 소리와 함께 145m 떨어진 과녁에 꽂혔다. 활이 명중하자 진동 센서가 이를 감지해 과녁 위에 달린 전구가 붉은빛으로 반짝였다.



△남산 중턱에 자리한 전통 활터 ‘석호정’. (사진=강민우 대학생 기자)

12일 방문한 석호정의 풍경이다. 활을 쏘아 표적을 맞춰 승부를 겨루는 ‘국궁’은 선사시대부터 행해진 우리나라의 전통무술이다. 지난달 30일엔 문화재청이 국궁을 국가무형문화재(제142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오랜 역사에도 젊은이들에게 국궁은 낯선 문화다. 그날 활터에 모인 궁사들도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과녁을 연이어 명중시키는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성균관대 중앙 국궁 동아리 ‘청금’의 회장 이재은(26) 씨였다. 이 씨는 초몰기(다섯 발을 연달아 명중)에 성공한 궁사에게만 주어지는 ‘접장’ 칭호를 받았을 정도로 명사수다. 이 씨를 통해 국궁에 빠진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활쏘기는 자신과의 싸움

“활을 쏘다 보면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돼요. 밖에 있는 과녁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기 때문이죠.”



△활시위를 당기는 이재은 씨.

145m 원거리 사격을 일컫는 ‘집궁’에 성공하려면 남다른 끈기가 필요하다. 화살 장전 없이 빈 활을 당기며 자세를 교정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연습을 오랜 시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활시위를 당기면서도 몸의 균형이 흐터리지지 않을 만큼 허벅지와 등에 근육이 붙어야 비로소 궁사로 거듭날 수 있다. 신체 단련이 전부가 아니다. 활쏘기에는 신체와 마음 두 가지 날개가 있다. 신체만 단련한다면 한 개의 날개로만 날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음은 곧 얼굴로 드러나게 되어있는데, 조금이라도 마음이 산만하면 얼굴이 일그러져요. 얼굴에 화살을 고정하니까 얼굴이 일그러지면 조준을 할 수 없죠. 활을 쏘면서 마음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생각을 다잡곤 해요.”  

이 씨는 “활쏘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취업난 등으로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에 지친 저 같은 청년들에게 국궁을 추천하고 싶어요. 몸과 마음을 함께 단련하며 한 단계씩 성장하는 스스로를 느끼고 위로를 받을 수 있거든요.”

자연에서 즐기는 멋스러운 운동

국궁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전신의 근육을 사용한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스포츠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궁의 가장 큰 매력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골프처럼 인위적으로 조성된 자연에서 하는 운동은 멋이 없어요. 국궁은 활과 화살 그리고 과녁만 있으면 되니까 자연을 보다 온전히 느낄 수 있죠.”



△화살을 주우러가는 길.

이 씨의 말을 실감한 건 활쏘기가 끝나고 화살을 주우러 과녁을 향해 걸어갈 때였다. 길은 양옆이 풀로 덮여있었고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숲은 벌레 우는 소리로 가득했다. 궁사들은 화살이 지나간 길을 걸으며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이 길을 걸을 때면 시위를 당기던 순간을 생각해요. 화살이 과녁에 명중했건 빗나갔건 중요하지 않아요. 집중력이 흐트러지진 않나 되돌아볼 뿐이죠.”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활성화

현재 이 씨가 소속된 성균관대 ‘청금’을 포함해 15개 서울권 대학에 국궁 동아리가 있다. 이들 학교 간 교류도 활발하다. 매년 약 150명의 학생이 육군사관학교에서 주최하는 ‘육사장기’, ‘서울권 대학 국궁연합회 교류전’ 등에 참가해 실력을 겨루기도 한다. 



△서울권 대학 국궁 동아리.

지금은 마니아층이 중심이지만 보다 많은 학생들이 국궁을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계획도 진행 중이다. 서울시 소속으로 5년 전부터 석호정 활터에서 국궁을 가르치고 있는 권덕용 사범은 “국궁은 평생 레저로도 손색없는 운동이다”라며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서 자체적으로 국궁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게 하고 싶다. 이를 위한 집중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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